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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야심작 '빅테인먼트' 그 현장을 가다 _ 스포츠서울

Posted by outstandingkey
2015.03.17 11:00 스포츠마케팅

 [스포츠서울] 새단장 한 kt wizpark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수원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마법사들의 공간은 ‘터치’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오는 14일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일 수원구장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티켓 예매와 발권부터 음식배달은 물론 선수들의 경기 정보와 생생한 라이브 중계까지 터치 한 번이면 모두 즐길 수 있다. ‘막내구단’ kt가 9일 ‘빅테인먼트’를 접목한 수원구장의 독특한 시설을 공개했다.

[스포츠서울] kt가 독자개발한 어플리케이션 위잽(wizzap) 화면. 어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무료회원 가입을 하면 kt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기가 와이파이를 통해 즐길 수 있다. 수원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앱 설치 하나면 터치로 즐긴다

빅테인먼트는 야구(Baseball)와 정보통신기술(ICT), 엔터테인먼트를 조합 한 신조어다. kt의 색깔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고, SK가 주도했던 스포테인먼트를 한 단계 넘어선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 kt 강신혁 뉴비즈(Newbiz)팀장은 “자체개발한 어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회원가입하면, 수원구장의 각종 편의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티켓 발권부터 식음료 예약과 배달, 실시간 중계와 기록 서비스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다. 통신사와 관계없이 모든 팬들이 이용하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마트 티켓은 관중들이 해당 좌석에서 보이는 구장 전경을 미리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강 팀장은 “관중들이 티켓을 몇 장 샀는지, 어떤 좌석을 선호하는지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구장에 실제로 입장한 관중들에 대한 실시간 이벤트도 할 예정”이라며 “기존에는 구단들이 티켓 예매 대행사를 활용했지만 kt는 이를 직접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지정좌석의 경우 음료나 햄버거 치킨 등 음식을 주문해 놓으면 입장했을 때 배달직원이 자리까지 갖다주는 서비스도 된다. 강 팀장은 “배달 직원 교육을 따로 시키는데 시범경기 때는 15명이 배치된다. 스마트 오더가 가능한 지역이 750석 정도가 된다. 운영 인력은 상황을 봐서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서울] 가로 28m 세로 9m 규모의 풀HD 전광판은 상단에 문자를 표출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 돼 있다. 전광판 위에 설치된 화성 성곽을 본뜬 구조물은 야간에 조명을 켰을 때 실제 성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구단 관계자의 주장이다. 수원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국내 최초 전광판서 문자응원을

관심을 모은 전광판도 새 단장을 마쳤다. 가로 28m, 세로 9m 크기에 풀HD 스크린으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전광판은 국내 최초로 문자중계를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kt 이인원 홍보팀장은 “전광판 상단에 문자중계를 할 수 있는 띠를 설치했다. 응원문구 등을 노출시켜 관중들과 호흡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전광판의 화질은 전 구장 중 가장 밝을 것”이라며 “수원을 상징하는 화성을 본따 전광판 위에 설치했다. 야간에 조명을 밝혀 놓으면 정말 화성 성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광판 옆, 중견수 뒤쪽 백스크린 위에는 스포츠펍이 자리잡고 있다. 실내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수원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오는 14일 개장을 앞두고 있는 수원구장은 2만 122석을 규모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수원 |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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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는 '을' … 구단 앞에선 입도 뻥끗 못해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5.08 16:50 스포츠마케팅

변호사들이 본 야구선수 인권 연봉 협상은 없고 일방통보 법률지식 없는 선수들 피해 “에이전트 도입해 보호해야”

 

선수들의 실력이나 팬들의 인기 면에서 국내 정상급인 프로야구 L구단. 이 구단은 올해 초 전체 선수단 연봉 계약 때 자신들이 최초에 제시한 액수를 모두 관철시켰다. 협상의 여지란 없었다. 한 선수가 “합리적인 연봉을 책정해 달라”며 자료를 준비해 제시했지만 L구단은 “선수공헌도를 평가하는 500여 가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책정한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랐다.

 어떤 데이터를 활용했느냐는 물음엔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선수는 구단의 제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한다. 한 야구 전문가는 “구단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연봉협상’이 아니라 ‘연봉통보’가 이뤄지는 게 국내 프로야구계의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프로야구가 지난 1일 관중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지만 선수 관련 규정은 후진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6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개최한 ‘스포츠 선수 인권 개선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는 다양한 실태와 법률적 문제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존재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적 요인들을 법률적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먼저 ‘에이전트(대리인)’를 두지 못하게 하는 프로야구 규약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올 초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 선수는 ‘스콧 보라스’라는 에이전트가 구단과 치열한 협상을 거친 덕분에 6년간 36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에이전트를 통해 구단과 계약하는 게 원천봉쇄돼 있다. 프로야구 규약 30조에 ‘구단과 선수가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대면해 계약해야 한다’고 돼 있어서다. 해당 조항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라 2001년 변호사에 한해 대리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하지만 ‘구단과 협의해 시행 시기를 정한다’는 부칙에 따라 10년이 넘도록 시행이 보류되고 있다.

이재경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적 지식과 자료, 정보가 없어 구단에 비해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선수 보호를 위해서는 에이전트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구단 측에서는 연봉이 치솟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에이전트의 횡포를 막을 장치를 마련하면 부작용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들의 등용문인 ‘지명권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구단이 지명한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길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신지혜(35·여) 변호사는 “미국과 일본은 1년만 지명권을 인정한다”며 “국내에선 지명권 행사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구조라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선수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행되는 트레이드도 도마에 올랐다. 박동희 야구해설가는 “기아와 SK가 오늘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선수들은 저보다 이적 사실을 더 늦게 알았을 것”이라며 “이적에 대해 당사자에게 귀띔조차 안 해주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관행”이라고 질타했다.

박민제 기자

◆스포츠 에이전트(sports agent)=스포츠 선수를 대신해 연봉 협상이나 신규 입단,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 등의 업무를 대행해 주는 전문가. 최근에는 선수의 훈련 프로그램을 짜주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포괄적인 매니지먼트로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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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마케팅 - [취재파일] 김연아, 피겨사상 최고의 선수?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3.20 10:48 스포츠마케팅

 

 

20세기 스포츠스타 톱10을 선정할 때마다 항상 들어가는 빅3가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입니다. 3명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모두 흑인이고 불우한 환경을 딛고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선수 생활 도중에 공백기를 가졌다가 다시 복귀해 챔피언이 되거나 우승한 점도 같습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2회 연속 우승, 3회 연속 우승보다 힘든 것이 상당한 공백기를 거친 다음 다시 정상에 서는 것입니다. 어떤 선수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어도 한번 공백기를 갖게 되면 그 이전의 기량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1964년 소니 리스튼을 꺾고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해 타이틀이 박탈됐습니다. 알리는 1967년 4월부터 1970년 10월까지 3년6개월동안 링에 설 수 없었습니다. 링에 복귀한 알리가 1974년 10월 이른바 '킨샤샤의 기적'을 통해 조지 포먼에 KO승을 거두고 다시 챔피언에 오를 때까지 걸린 시간은 꼭 4년이었습니다. '복싱천재'라고 불린 알리도 공백기를 극복하는 데 이렇게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1993년 10월 돌연 은퇴를 선언해 전 세계 농구팬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은퇴 발표가 있기 석달 전 조던의 아버지는 노스캐롤라이주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인조 강도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조던은 농구 코트를 떠났습니다. 몇달 뒤 그가 나타난 곳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이었습니다. 조던이 메이저리거가 될 것을 희망한 아버지의 소원을 뒤늦게나마 이루겠다는 조던의 효심때문이었습니다. 조던이 아무리 운동재능이 뛰어나도 31살의 나이에 야구를 시작해 메이저리거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조던은 은퇴를 선언한 지 1년 5개월만인 1995년 3월 미 프로농구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년여뒤 시카고 불스를 다시 NBA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잘 아다시피 2009년 11월 불륜 스캔들에 휘말렸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뒤 자신의 잘못을 공식 사과하고 잠정 은퇴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즈는 두 달도 채 안돼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출전을 선언했습니다. 자신의 첫 메이저우승이 1997년 바로 이 대회였고 자신은 이 대회를 매우 존중한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우즈는 정확히 5개월의 짧은 공백을 가졌지만 다시 우승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복귀한 지 1년8개월만인 2011년 12월 자신이 주최하는 이벤트 대회인 셰브런 월드챌린지에서 힘겹게 정상에 올랐습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1년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 이후 링크를 떠났습니다. 1년3개월 뒤인 2012년 7월 복귀를 선언한 뒤 넉달만인 지난해 11월 독일 NRW대회에서 우승했고 그로부터 다시 넉달뒤 세계선수권에서 챔피언 자리에 다시 등극했습니다. 그것도 더 완벽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길었던 공백 기간을 생각하면 너무도 짧은 기간내에 전성기를 능가하는 기량을 보여줬습니다. 천부적인 재능과 처절한 투혼이 어우러진 거의 기적같은 성취입니다. 내년 2월 소치동계올림픽은 그야말로 김연아 자신과의 싸움이 될 듯 합니다. 김연아가 2회 연속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됐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전성기 시절 "나는 복싱보다 위대하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당시 복싱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탁월한 복서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떻게 복싱보다 위대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너무 건방진 소리 아닌가"라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알리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복싱 자체는 어찌보면 링에서 두 선수가 치고받는 것에 불과하다. 자칫 싸움에 그칠 수 있는 복싱을 아름답게 또 완벽하게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으니 내가 더 위대한 것 아닌가?" 그는 전설적 떠벌이답게 스스로 "The Greatest"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스포츠사에 김연아처럼 한 종목을 완전히 그것도 월등한 기량으로 정복한 선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계피겨사를 보더라도 김연아보다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선수는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세계언론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김연아는 다른 별에서 온 선수이다. 외계인 같다"부터 "앞으로 피겨대회는 김연아를 1부에 출전시키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2부에 출전시켜야 한다"까지 동원 가능한 형용사를 사용해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인생 마지막 목표로 삼은 내년 소치올림픽 제패도 멀지않아 보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무하마드 알리의 표현처럼 '피겨보다 위대해'질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계 피겨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습니다.

 

- 출처 인터넷뉴스 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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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10구단 시대는 열렸지만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3.07 21:33 스포츠마케팅

프로야구 1,000만 관중시대. 꿈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얼마전 KT를 프로야구 10구단 신규 회원으로 만장일치 가입 의결 했다. 이로써 프로야구는 2015년 5개 팀씩 운영하는 양대 리그 체제를 갖추게 돼 출범 32년 만에 지형도가 바뀌게 됐다.

10구단 선정과정에서 대다수 언론들은 KBO가 첫째 승자이고 탈락한 부영이 두 번째라고 말한다. 왜 일까? KBO는 프로 야구 발전의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부영은 창사이래 언론의 주목을 받고 브랜드가 홍보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든다. 실제 한 달여 이상 언론을 통해 뜨겁게 달군 두 기업과 지역의 대결은 국민적인 관심사로 부상한 뒤 ‘페어플레이’로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창립자인 필립 나이트 회장은 “결승선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나이키의 제품 개발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승리가 결정되는 결승선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는 것과 뜻과 같다.

이처럼 프로 야구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스포츠로 팬과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에는 끝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국민 행복 드라마를 창출해야 한다. 야구 경기는 흔히 희로애락과 생로병사가 다 담겨진 인생사와 곧잘 비교 된다. 야구와 인생의 닮은꼴을 살펴보면 가장 결정적인 단어가 바로‘역전’이 아닐까. 역전 이라는 말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야구에서 짜릿한 역전 명승부는 국민들에게 가난과 좌절을 극복하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 승패를 떠난 스토리,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선수와 팀 그리고 팬들의 이야기를 함께 엮어 나가야 한다.

둘째, 단순한 입장 관중 숫자가 아니라 숫자 이면에 있는 팬들의 열정을 발견해야 한다. 나아가 관중 밀도가 아니라 야구장을 직접 찾는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스토리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흥행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라이벌전을 통해 성장해왔고 대중화의 자양분을 얻어 냈다. 이러한 열정을 만드는 라이벌전의 핵심은 지역과 사물이다. 경북고와 군산상고, 목포의 눈물과 부산 갈매기 등의 라이벌 경기가 펼쳐지거나 지하철 더비(지하철을 타고 경기장을 이동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 팀간의 경기)와 같은 매개를 설명하는 스토리가 만들어 져야 한다. 더비 게임을 통해 서로 울고 웃으면서 지역은 하나가 되고 국민들은 힘을 얻게 된다. 10구단 선정에서 KT의 성공이 더욱 빛나는 것도 부영-전북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샤우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야구 경기가 시작 되면 모든 관중들의 시선은 야구공 하나에 집중 된다. 이때 볼 하나에 웃고 우는 행복과 슬픔의 탄식을 통해 수만명의 관중들은 하나가 된다. 샤우팅은 하나 된 함성으로 스트라이크, 안타, 아웃, 홈런, 베이스 밟기 순간에 극적으로 표출된다. 샤우팅이 터져나올 때 마다 관중과 팬 그리고 국민 전체는 한 마음이 된다. 샤우팅은 한 경기 동안 몇 번이나 만들어 질까? 야구의 경우 평균 3시간 20분, 양 팀 점수 15점 경기를 기준으로, 평균 150회 전후로 쾌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경기평균 2~3분마다 샤우팅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야구장에 가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처럼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다양한 이야기가 뒷받침 돼야 한다.

프로야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역전의 순간, 열정과 샤우팅이 나올만한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보여진다. 이를 더욱 발전 시켜 나가려면 프로 구단들은 KT와 부영이 제출한 제안서의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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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없을 땐 투수가 12초 안에 공 던지는 이유는? - 출처 조선비드 -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2.13 09:28 스포츠마케팅

[스포츠 업계에도 친환경 바람]
경기 시간 단축 위해 규칙 변경, 공격·수비 교대 시간도 줄여
경기장 곳곳 태양광 패널 설치, 쓰레기 재활용·물 사용 감축도
"스포츠 업계 친환경 캠페인 대중에 미치는 영향 엄청나"

미국 메이저리그는 홈구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구단을 해마다 선정해 '그린 글러브(Green Glove)'상을 준다. 올해로 벌써 5회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0년 프로야구 정규리그부터 주자가 없을 경우 투수는 12초 이내에 공을 던지도록 경기 규칙을 바꿨다. 경기의 속도를 높여 재미를 더하고 동시에 에너지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산업으로 성장한 스포츠 업계에서도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은 중요한 이슈다. 최근 이 움직임이 더 확산되는 추세다. 올림픽은 물론 국제자동차연맹(FIA)도 에너지 절감 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포츠 업계가 친환경 캠페인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제는 엄연한 대형 산업으로서 에너지 절감의 필요성이 커진 데다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일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수퍼볼)은 미국 인구의 3분의 1인 1억1000만명이 시청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프로야구가 관중 수 700만명을 돌파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스포츠 업계의 친환경 노력을 보도하면서 "스포츠 업계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포츠 업계의 친환경 노력이 그만큼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AT&T 파크 구장, 쓰레기 85% 재활용

친환경 운동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대표적인 게 위에서 언급한 '그린 글러브'상이다. 올해 이 상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돌아갔다. 자이언츠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AT&T 파크 구장에서 나온 쓰레기 중 85.2%를 재활용했다.

2000년 3월 문을 연 AT&T 파크는 처음부터 친환경 구장으로 설계, 구장 유지와 운용에 들어가는 비용을 확 줄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 가운데 가장 먼저 '친환경 건축 인증'을 받았다. 구장 내 조명은 전기를 30% 이상 적게 쓰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로 달았고, 전기 일부를 태양광에서 얻기 위해 구장 곳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AT&T 파크 물관리 시스템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자이언츠는 구장 내 흙에서 물이 잘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수분을 잘 흡수하는 진흙과 가는 흙의 비중을 늘렸다. 덕분에 이 구장은 다른 구장보다 구장 관리에 필요한 물 사용량도 33%나 줄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 속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팀의 홈구장인‘AT&T 파크’. 자이언츠는 올해 메이저리그팀 중 홈구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구단에 수여하는‘그린 글러브’상을 받았다. 구장 외벽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블룸버그

 

스포츠 경기 시간도 줄인다

국내 스포츠계에서도 에너지 절약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0년 정규리그부터 주자가 없을 경우 투수가 12초 이내에 공을 던지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어길 경우 처음엔 경고를 주고, 두 번 어겼을 때는 볼로 인정하는 강제 조항도 뒀다.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시간도 대폭 줄였다. 통상 5~6분인 공수교대 시간을 확 줄인 것. 타자들도 몸을 푸는 시간을 줄이고 가급적 타자석에 신속히 입장해야 한다.

KBO는 평균 경기 시간을 3시간 이내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2012년 시즌의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7분이었다. 경기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에너지 등 각종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야간경기가 7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한 수준이다. 인천 문학구장의 에너지 사용량은 연간 5만5123t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449t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천 문학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경기 관람 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스포츠계에 확산되는 친환경

스포츠계의 친환경 열풍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최된 영국 런던올림픽은 대표적인 친환경 올림픽으로 꼽힌다. 앞서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도 친환경 올림픽을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스포츠 업계 내에서도 일부 반발은 있다. 세계 정상급 자동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 원(F1)은 '재미'와 '친환경 가치'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진 경우다.

포뮬러 원을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은 2014년 시즌부터 출전 차량은 모두 종전 대회보다 연료 소모를 35% 줄이도록 규칙을 바꿨다. 이에 따라 출전 차량은 종전보다는 작은 엔진을 도입하고 차체 일부 형태를 바꾸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일부 관계자의 반발로 차제 변경은 무산됐다. 상당수 포뮬러 원 팬과 관계자들이 포뮬러 원의 규칙이 바뀔 경우 종전보다 박진감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발도 친환경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주요 차량 회사들이 이 대회를 자신들의 친환경 이미지를 부각하고 새로운 차량 기술을 검증하는 시험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FIA 측은 "새 규칙을 적용해도 2010년 최고 기록보다 고작 5초가 느려질 뿐"이라며 "친환경 정책 기조를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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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나이키 VS 아디다스]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1.31 22:59 스포츠마케팅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팅 인텔리전스’는 최근 2007~2008 시즌 이후 5년간 유럽 축구 클럽의 유니폼 판매량을 조사해 발표했다. 공동 1위를 차지한 클럽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국제축구연맹이 20세기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선정한 레알 마드리드로 140만 벌씩을 팔았다. 인기의 척도인 유니폼 판매량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클럽의 유니폼은 공교롭게도 각각 스포츠용품 업계의 영원한 라이벌 나이키와 아디다스 브랜드를 달고 있다.

스포팅 인텔리전스가 발표한 유니폼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든 팀을 살펴보면 더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나이키는 이 가운데 3위 바르셀로나(스페인·115만 벌), 7위 아스날(영국·80만 벌), 8위 유벤투스(이탈리아·48만 벌), 9위 인테르(이탈리아·42만5000벌) 등 총 5팀을 후원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포함해 나머지 4위 첼시(영국·91만 벌), 5위 바이에른 뮌헨(독일·88만 벌), 6위 리버풀(영국·81만 벌), 10위 AC밀란(이탈리아·35만 벌)은 모두 아디다스 브랜드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유럽의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축구에서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셈이다.

다슬러 형제의 신발공장

스포츠용품 업계의 두 라이벌 가운데 브랜드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큰형님’은 당연히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는 1920년 독일의 아돌프(아디) 다슬러와 루돌프 다슬러 형제가 20㎡ 남짓한 어머니의 세탁실에 차린 신발공장에서 만든 수제 스포츠화로 출발했다.

다슬러 형제의 신발이 처음 빛을 본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였다. 리나 라드케 선수가 아디 다슬러가 만든 신발을 신고 여자 800m 달리기에서 세계 최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4년 뒤 세계대공황의 그늘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다슬러 형제는 또다시 주목받는다. 아디 다슬러는 스티치로 신발에 스트라이프를 새기고 구멍쇠를 보강한 신형 트랙 스파이크를 선보였다. 독일의 아더 요나트 선수와 미국의 빌 헬미나 선수는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신고 각기 남자 100m와 여자 100m 달리기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스타 제시 오언스도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신고 달린 스타다. 그는 특별한 위치에 스파이크를 박은 ‘로우 컷 어퍼’ 신발을 신고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해 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린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가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다. 이 대회에서는 ‘체코의 증기기관차’로 불린 에밀 자토펙 선수가 아디 다슬러의 경량신발을 신고 1만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스타가 됐다. 아디다스는 그해 삼선(三線)과 함께 브랜드로 상표 등록을 했다.

하지만 큰 성공은 형제 사이를 갈라놨다. 사업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루돌프 다슬러가 1948년 ‘퓨마’를 설립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다. 아디 다슬러는 이듬해인 1949년 8월 18일 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아디다스를 창립했다.

아디다스는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독보적인 브랜드파워를 구축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올림픽 역사에서 아디다스를 신었던 스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는 금방 확인된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에밀 자토펙은 7일 동안 5000m, 1만m,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이 됐다. 미국 출신의 밥 마디아스 선수는 아디 다슬러가 직접 제작한 스파이크를 신고 허들과 장대높이뛰기에 참여해 10종 경기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디다스의 성공시대

남반구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인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아디다스는 원반 던지기의 전설 알 오터에게 스파이크를 갈아 끼울 수 있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발을 제공했다. 3단 뛰기에서는 발에 전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앞쪽 스파이크 바닥을 개선한 신발을 신은 브라질의 아데마르 파비아노 데 실바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아디다스의 신발을 신은 선수들이 세운 세계 최고기록만 무려 33개에 달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당시 18세 소년이던 무하마드 알리가 아디다스의 삼선(三線)이 선명한 복싱화를 신고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캥거루 가죽에 나일론 스파이크 밑창을 단 초경량 스파이크를 신은 미국의 윌마 루돌프가 육상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전체 육상경기 참가 선수의 75%가 아디다스를 신었다. 아디다스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1964년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전체 육상선수의 80%가 아디다스를 신었고 그중 99명이 메달을 땄다. 그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트랙용 신발은 신발 한 짝의 무게가 135g에 불과한 아디다스의 ‘도쿄 64’였다. 1만m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 선수 빌리 밀스도 당연히 도쿄 64를 신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아디 다슬러는 미국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버리의 의견을 신발에 반영했다. 포스버리는 오늘날 모든 높이뛰기 선수가 따라 하는 ‘배면뛰기(포스버리 점프)’를 선보인 전설적인 선수다.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신은 포스버리는 이 대회에서 2.24m를 넘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해 밥 비몬은 멀리뛰기 종목에서 기존 세계기록을 55㎝ 경신한 8.9m를 뛰었다. 그 해의 모든 ‘점프’는 아디다스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아디다스는 자국 독일에서 열린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세 개의 나뭇잎 모양 밑에 삼선이 들어간 ‘트레포일(Trefoil)’ 로고를 선보였다. 독일 선수 하이데 로젠달은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아디다스를 신고 멀리뛰기와 400m계주 금메달, 5종 경기 은메달을 땄다. 아디다스는 그녀를 통해 많은 제품을 테스트하면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이던 석션컵 아웃솔 패턴과 단거리용 신발을 개발할 수 있었다.

‘쿠바 경주마’ 알베르토 후안토레나가 800m와 400m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신은 신발도 아디다스의 ‘아디스타 2000’이었다. 이 신발은 바닥이나 취향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스파이크 시스템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해 아디다스를 빛낸 가장 큰 별은 15세의 루마니아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였다. 그녀는 2단 평행봉에서 10점 만점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치열한 냉전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이 돼버린 모스크바 올림픽(1980)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1984)에서도 아디다스는 여전히 압도적인 브랜드였다. 모스크바에서는 자토팩처럼 5000m와 1만m를 동시에 석권한 에티오피아의 미루츠 이프터 선수를 비롯해 80% 이상의 선수가 아디다스를 착용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140개국 중 124개국 선수가 아디다스를 착용했고 그들이 딴 메달은 모두 259개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당대 최고의 여성 테니스 선수 슈테피 그라프도 아디다스를 신은 스타였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이전에 이미 4개의 메이저 테니스 대회를 석권한 상태였던 그녀는 결승전에서 가브리엘라 사바티니를 누르고 ‘그랜드 슬램’을 넘어 ‘골드 슬램’을 달성했다.

트럭 행상으로 출발한 나이키

아디다스가 초창기부터 최고의 스포츠 스타에게 자사 제품을 신기며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반면 나이키의 출발은 평범했다. 나이키는 1964년 육상선수 출신 필립 햄슨 필 나이트와 오리건대 육상코치 빌 보워먼이 세운 회사다. 오리건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나이트는 그해 일본 신발회사 오니쓰가 타이거의 러닝화를 수입해 파는 일로 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필 나이트는 처음에는 트럭에 러닝화를 싣고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판매를 했다. 회사 이름은 ‘블루리본스포츠’라고 붙였다. 일본 회사와 계약이 끝날 무렵인 1972년 두 사람은 직접 신발을 만들기로 하고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정했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나이키는 당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생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로고 디자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필 나이트는 데이비슨이 만든 디자인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차선으로 하나를 선택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유명한 나이키의 로고 ‘스우시(Swoosh)’ 마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나이키가 데이비슨에게 지불한 돈은 불과 35달러였다. 2011년 기준으로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가 139억 달러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로도 한참 부족한 금액이었다.

나이키에게 도약의 발판이 된 운동화 ‘와플 트레이너’도 스우시 로고만큼이나 우연하게 탄생했다. 필 나이트의 대학시절 코치이자 동업자인 보워먼은 아내가 사용하는 와플 굽는 틀을 바라보다가 문득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와플 틀 속에 고무를 집어넣고 고무와플을 만든 것이다. 그는 고무와플을 잘라 신발 밑창에 아교로 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던 팀 선수들에게 신발을 나누어주고 뛰어보도록 했다.

보워먼이 아내의 와플 기계를 엉망으로 망쳐놓으면서 만든 신발에 대한 선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와플 무늬의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은 탄력성이 매우 뛰어났던 것이다. 신발 밑창 무늬가 달 표면에 새겨진 우주인의 발자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달 신발’로 불린 와플트레이너는 나이키에 큰 명성과 상업적 성공을 안겨줬다.

스타 마케팅은 나이키의 성장 스토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이키가 가장 먼저 스폰서십을 맺은 스타는 루마니아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일리에 너스타세다. 1970년대 최정상급 테니스 선수였던 그는 57개의 단식 타이틀과 51개의 복식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7번이나 우승한 너스타세를 후원하면서 나이키는 글로벌 스포츠용품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뗐다.

 

 

 

스타 마케팅 대성공

나이키가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스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이다. 1984년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은 데뷔 첫해에 한 경기당 평균 28.7점이라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듬해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던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 63 득점을 올리며 농구 팬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래리 버드가 당시 “신이 조던의 모습으로 변장했다”고 혀를 내두른 일화는 NBA 팬들 사이에는 전설이 됐다.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서 1980년대 내내 득점왕을 차지하고 1990년대 초반과 중반 두 차례에 걸쳐 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신화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조던의 시그니처 운동화 ‘에어 조던’을 앞세운 나이키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1985년 처음 선을 보인 에어 조던 시리즈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운동선수의 이름을 붙인 신발이란 것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다른 농구화에 비해 2, 3배 가격인 에어 조던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모습은 경쟁업체들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농구화는 당연히 하얀색이라는 당시의 편견을 깨고 검은색, 빨간색까지 사용한 과감한 디자인도 에어 조던의 인기에 일조했다. NBA는 다른 선수들과 색깔이 다른 농구화를 신고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는 규정을 뒀지만 이미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이는 스타였던 조던은 시합마다 벌금을 내가며 에어 조던 농구화를 신었다. 전 세계로 중계된 그의 경기에서 나이키가 얻은 광고효과가 조던이 낸 벌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에어 조던의 큰 인기는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새로운 디자인의 에어 조던이 나올 때마다 나이키 매장에 강도가 들이닥치는가 하면 신발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생겨났다. 나이키는 학생들이 에어 조던 신제품을 사기 위해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제품 발표 시기를 주말로 바꿔야 했을 정도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나이키의 스타 마케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나이키는 1996년 우즈를 후원하면서 골프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우즈가 주요 대회를 휩쓸면서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하면서 나이키골프의 옷과 모자, 골프용품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 말 여러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즈가 추락하자 컨설팅업체 액센추어, 스포츠음료 업체 게토레이 등 수많은 기업이 후원을 중단했다. 하지만 나이키는 끝까지 우즈를 지켰다.

결과적으로 우즈를 버리지 않은 나이키의 선택은 옳았다. 미국 ‘포브스’지가 2012년 브랜드 연구기관 레퓨컴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즈는 후원업체에 총 1890만 달러의 홍보효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키는 특히 우즈를 통해 1810만 달러가량의 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골프선수 가운데 2위를 차지한 로리 매킬로이의 1290만 달러보다도 무려 500만 달러 이상 높은 수준이다.

‘코트의 악동’으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존 매켄로도 나이키가 후원한 대표적 스타플레이어다. 7개의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과 9개의 그랜드 슬램 남자 복식 타이틀, 그리고 1개의 그랜드 슬램 혼합복식 타이틀을 차지한 매켄로도 나이키에는 훌륭한 광고판이었다. 매켄로는 심판을 향해 “농담 좀 하지 마쇼”라고 윽박지르는 등 기행으로 일거수일투족이 늘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같은 관심 덕분에 나이키는 매켄로가 신은 테니스 슈즈를 1주일 만에 2만 켤레나 팔 수 있었다.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의 양대 축인 두 업체의 광고 캠페인은 숱한 패러디까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광고 카피도 불꽃 대결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그냥 해봐’ 정도의 뜻인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은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장이 된 유명한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1988년 광고대행사 ‘위든 플러스 케네디’와 나이키의 만남에서 나왔다고 한다. 위든 플러스 케네디의 설립자 댄 위든은 엉뚱하게도 악명 높은 살인마 게리 길모어가 처형 직전 남긴 마지막 말 ‘렛츠 두 잇(Let?s do it)’에서 이 슬로건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키는 제품을 조명하는 대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여준 뒤 ‘저스트 두 잇’이라는 도전정신을 제안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검은 화면에 강렬한 하얀색 글자로 된 3단어를 던지는 이 광고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운동화 시장에서 나이키의 시장점유율은 큰 폭으로 뛰었고 ‘저스트 두 잇’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광고 슬로건 톱 5에 뽑혔다.

아디다스의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캠페인도 2004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무하마드 알리와 그의 딸 라일라 알리가 경기를 벌이는 모습을 담은 광고로 큰 관심을 끌었다. 무하마드 알리의 전성기 때 경기 화면에 라일라 알리의 복싱 장면을 합성한 이 광고는 큰 울림을 낳았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의견일 뿐이다. 사람들은 ‘여자는 복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해냈다. 나는 링에 섰다. 내 아버지 알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싸워라, 내 딸. 넌 할 수 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버지와 딸이 수십 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화면 속에서 멋진 복싱을 선보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TV 화면 속에서 가능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은 아디다스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2007년에는 리오넬 메시, 데이비드 베컴, 길버트 아레나스 등 스포츠 스타들이 나서서 자신이 힘든 시절을 딛고 스포츠스타가 된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형식의 광고를 내놓았다.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로 시작하는 광고내레이션은 다양한 버전의 패러디를 낳았다. 이 광고는 불가능에 도전하려는 이들의 첫걸음에 박수를 보내는 메시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디다스는 2011년에는 ‘아디다스 올인(adidas is all in)’ 브랜드 캠페인을 새로 선보였다. 이 캠페인은 나이와 성별, 지역, 직업을 뛰어넘어 열정(Passion)을 통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네이버 기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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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마케팅이란?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1.12 01:31 스포츠마케팅
스포츠마케팅이란?
스포츠를 이용하여 제품판매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기법

올림픽이나 월드컵같는 국제대회에 후원하는 회사
대회를 통해 자신들의 회사 홍보
대회선수에 자회사 로고
선수들을 자신의 회사 광고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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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의 고유의 명물

Posted by outstandingkey
2013.01.11 14:05 스포츠마케팅

메이저리그 각 구장들은 저마다 고유의 명물이 한 가지 이상 있다.

LA 에인절스의 홈구장 에인절스타디움에 가면 좌중간 펜스 뒤 인공 바위산 - 바위산 사이로 수증기가 올라오고 계곡처럼 물도 흐른다. 에인절스 선수가 홈런을 치거나 결정적인 상황이 연출되면 물기둥과 폭죽이 바위 틈 사이로 솟구쳐 오르는 멋진 광경도 연출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 좌측 초록색 펜스는 엄청난 높이를 자랑해 ‘그린몬스터’라 불린다. 또 우측 관중석에는 단 한 개의 붉은색 좌석. ‘테드 윌리엄스 의자’가 있다. 1946년 테드 윌리엄스가 친 502피트짜리 대형 홈런볼이 떨어진 곳을 기념한 것이다.

피츠버그의 홈구장 PNC파크 우측 펜스도 그린몬스터만큼 높다. 그것의 이름은 ‘클레멘테의 유령’이다. 피츠버그의 전설적인 스타 로

베르토 클레멘테의 이름을 땄다.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 유명한 담쟁이덩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패를 알려주는 깃발과 1941년 제작된 스코어보드 시계도 디지털시대를 거부하는 리글리 필드를 대표

샌프란시스코의 AT&T파크에는 외야 좌중간 관중석 뒤에 대형 글러브 조형물이 있다. 모든 선수들이 그 대형 글러브 안으로 홈런을 치고 싶어 한다. 우측 펜스 뒤에 위치한 멕코비코브는 자연 그대로가 AT&T파크를 상징한다.

양키스타디움의 기념공원. 캔자스시티 코프만스타디움의 분수. 콜로라도 쿠어스필드의 습도유지실. 다저스타디움의 푸른색 외야 펜스. 토론토 로저스센터 외야의 호텔룸 등.
메이저리그 구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명물들이 있다.
국내 구장은 어떨까???
한국을 대표한다는 잠실구장만 봐도 떠오르는 상징물이 없다.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구장 역시 특색 없이 무미건조하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어도 구장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그 구장만의 특별한 명물을 만드는 일은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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